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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1월 17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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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Gregory)

신분 : 주교, 역사가

연대 : 538-594녀

지역 : 투르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 플로렌티우스(Gregorius Florent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프랑스 지방의 클레르몽-페랑이 고향인데, 부친이 사망한 뒤부터는 아저씨인 성 갈루스 클레르몽(Gallus Clermont)의 지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또한 그는 성 아비투스(Avitus)의 문하에서 성서를 공부하였는데, 573년에 투르의 주교로 축성되었고, 국왕을 반대하던 왕자 메로베우스를 지지하였다. 이리하여 이 유능하고 영향력 있는 주교는 정치 문제에 휘말려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투르의 대성당을 비롯하여 수많은 교회들을 재건하였고 이단자들을 개종시켰으며 그의 정의, 사랑 그리고 신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는 성인들의 전기를 비롯하여 순교자와 교부들의 전기를 서술하였는데, 특히 “프랑크인들의 역사”가 유명하다.

 

그레고리오(Gregory)

 

신분 : 주교, 선교사

연대 : 213-268년

지역 : 네오카이사레아

 

  소아시아 폰투스(Pontus)의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방인 가문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Gregorius Thaumaturgus, 또는 기적자 그레고리오)는 훌륭한 집안의 자녀답게 그곳에서 법률을 공부하였다. 233년 그는 동생인 성 아테노도루스(Athenodorus, 10월 18일)와 함께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레바논의 베이루트(Beirut)로 가려 했으나,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갔을 때 오리게네스(Origenes)를 만나 결국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리게네스에 의해 세례를 받고 개종하였다. 5년 동안 오리게네스의 문하생으로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그는 선교사로서 폰투스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아직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네오카이사레아의 주교로 임명되어 거의 30여 년 동안이나 지역 주민들의 개종사업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교회의 축제일에 세속적인 흥미를 가미시키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을 대중화시킨 인물로서 유명하다. 또한 그는 수많은 신학논문들을 남겼고, 그의 높은 인기 때문에 '타우마투르고' 즉 '놀라운 일을 하는 사람'(기적자)이란 별명을 얻었다.

 

디오니시오(Dionysius)

신분 : 주교, 증거자

연대 : 265년경

지역 : 알렉산드리아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는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원에서 오리게네스(Origenes)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그 자신이 원장이 되었고, 거의 14년 동안이나 이 학교에서 가르쳤다. 24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승품되었는데, 때마침 박해가 일어나서 그도 역시 체포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도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리비아 사막의 모처에서 자기 교구를 다스렸으며, 251년에 데키우스 황제가 죽을 때까지 이런 식으로 주교직을 수행하였다.

   박해가 끝나자 이번에는 박해 동안에 생긴 배교자들에 대한 처리 문제로 시끄럽게 되었을 때, 그는 회개자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편의 지지자로 활동하였다. 또 다시 발레리아누스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체포되어 추방되었다. 그는 261년에 귀향했으나, 이미 그 도시는 폭동과 페스트 그리고 기근으로 황폐하게 변해 있었다. 밖으로 나가거나 집안에 있거나 마찬가지로 위험하였다.

   이처럼 그의 17년간의 주교생활은 온갖 시련으로 가득하였지만, 교회와 사회 재건을 위하여 활발히 활동하여 큰 사람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교 문학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문학에도 정통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덕과 학문은 종종 위대한 디오니시우스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났다.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e Philippine Duchesne)

 

신분 : 수녀원장, 선교사

연대 : 1769-1852년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에서 부유한 어느 상인의 딸로 태어난 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a-Philippine Duchesne)는 그 도시 근교에 있던 생트 마리 당 오(Sainte-Marie-d’en-Haut)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았고, 강력하게 결혼을 요구하던 양친을 뿌리치고 17세 때에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791년의 프랑스 공포정치 동안에는 그 수녀회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으나, 자신은 몰래 집으로 돌아와서 병자들을 방문하거나 교육하는데 헌신하였으며, 혁명의 희생물로서 감옥에 갇힌 성직자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는 일을 하였다.

   1801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와 나폴레옹이 국가와 교회간의 평화스런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협정을 체결 후, 그녀는 자신이 교육을 담당해오던 곳에 수도원을 재건하려고 크게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녀는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Madeleine Sophie Barat, 5월 25일) 원장을 설득하여 막달레나(마들렌) 원장이 성심 수녀회를 세우는데 기여하였고, 자신과 다른 네 명이 청원자가 되어 그 다음 해에 서원하였다.

   1818년 그녀는 4명의 수녀와 함께 미국으로 파견된 분원의 원장이 되었고,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근교인 세인트 찰스에 미국의 첫 번째 성심 수녀회 수도원을 세웠다. 그들은 미시시피 서안에 무료학교를 처음으로 운영하다가, 다음 해에 세인트루이스의 플로리샌트(Florisant)로 옮겼다. 많은 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동체는 크게 꽃피울 수 있었고, 1828년경에는 미시시피 강변을 따라 6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840년에 미국 지부장직을 사임하고는 캔자스(Kansas)의 슈가크릭(Sugarcreek)에서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71세였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에 건강이 나빠서 떠나고 말았지만 그녀의 정열적인 활동은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는 세인트 찰스로 은퇴하여 지내다가 1852년 10월 18일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1940년에 시복되었고, 1988년 7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빅토리아(Victoria)

아치스클로(Acisclus)

신분 : 순교자

연대 : 4세기경?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Curdoba) 태생인 성 아키스클루스(Acisclus)와 성녀 빅토리아는 남매지간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된 이들 남매는 배교를 강요당하였지만 끝까지 인내했는데, 아키스클루스는 참수형을 받았고 빅토리아는 화살을 맞고 순교하였다. 두 성인의 유해는 민치아나라는 부인의 손으로 자기 집에 묻혔는데, 후일 그곳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살로메(Salome)

신분 : 과부, 수녀원장

연대 : 1268년

지역 : 폴란드

 

   1205년경 성 빈첸시오 카드루벡(Vincentius Kadlubeck)은 헝가리의 안드레아 2세 국왕의 궁전에 3세난 어린아이를 맡겼는데, 그 아이가 곧 살로메이다. 그녀는 안드레아 왕의 아들 콜로만(Coloman)과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꼭 10년 후에 성대한 결혼식이 베풀어졌다. 그러나 살로메는 공주로서보다는 수녀처럼 살았다. 이윽고 그녀는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으며, 그녀의 행동은 궁중에서 모범이 될 수밖에 없었다. 1225년경 콜로만이 전사하자 살로메는 몇 년 동안 과부생활을 하다가 클라라회 수도원을 세운 뒤에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22년간 수녀생활을 했으며 원장을 역임한 바도 있다. 그녀는 1673년에 시복되었다.

 

아니아노(Anianus)

신분 : 주교

연대 : 453년

지역 : 오를레앙

 

   성 아니아누스(또는 아니아노)는 비엔(Vienne) 태생으로서 얼마 동안 은수 생활을 한 후 오를레앙으로 갔을 때, 그곳의 거룩한 주교이자 명망 있던 에부르티우스(Evurtius)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에부르티우스 주교가 운명할 때 그의 후계자로 임명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주교 후보자 명단을 그릇에 담고 어린이가 제비를 뽑았는데, 그것이 아니아누스에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가 주교좌에 착좌할 때 그 당시의 관례대로 지방 장관에게 죄수들의 석방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 목적을 달성하였다.

   451년 오를레앙은 아틸라(Attila)와 훈족들의 침공을 받았는데, 주민들은 이곳의 주교가 이 도시를 방비해야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아누스 주교는 백성들을 격려하고 방위군을 조직하였으며, 로마군 대장 아이티우스(Aetius)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 아이티우스의 행동이 너무 느려서 도시는 함락되었고, 훈족들이 도시를 약탈하고 포로들을 끌고 가려할 때 아니아누스 주교의 군대가 적들을 센(Seine) 강 너머로 쫓아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아니아누스는 이 일이 있은 지 2년 후에 운명하였다. 에그난(Aignan)으로도 불린다.

 

알패오(Alphaeus)

자캐오(Zachaeus)

신분 : 독서자, 순교자

연대 :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의 재임 12주년을 기념하여 베푼 게임에서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총독이 그리스도인들만 제외한 죄수들의 사면을 요청하였다. 이때 고다라(Godara)의 부제이던 성 자캐우스(Zachaeus)만 제외되어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았다. 그는 이토록 심한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였는데, 이 광경을 본 성 알패우스(또는 알패오)도 스스로 박해에 뛰어들었다. 알패우스는 엘레우테로폴리스(Eleutheropolis)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카이사레아(Caesarea) 교회의 독서자였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303년 11월 17일 함께 참수를 당하였다.

 

에우제니오(Eugene)

신분 : 부제

연대 : 422년

지역 : 피렌체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주교인 성 제노비우스(Zenobius, 5월 25일)의 부제로 밀라노(Milano)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의 제자였다.

 

요안나(Jane) (복녀)

신분 : 동정녀

연대 : 1245-1307년

지역 : 세냐

 

   요안나(Joanna)는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교외 세냐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매우 가난한 농부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양치는 일로 부모를 도왔다. 그러나 매우 열심하던 그녀는 양치는 다른 친구들을 권유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보살폈고, 또한 자신이 먼저 모범적으로 살았다. 23세 때에 그녀는 성녀 베르디아나(Verdiana)의 섭리적인 말씀으로 영감을 받고, 고향 마을의 강둑에 움막을 짓고 은수생활을 시작하여 40년을 살았다. 이때부터 그녀 주변에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후고(Hugh)

신분 : 주교

연대 : 1140-1200녀

지역 : 링컨

 

   아발론(Avalon)의 성주 빌리암(William)의 아들인 성 후고(Hugo)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아발론 성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에 어머니 안나(Anna)를 잃고 빌라드-브느와(Villard-Benoit)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는 19세 때에 부제로 서품을 받고 성 막심(Maxim)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1160년에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 Chartreuse) 수도원을 방문한 뒤에 그는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0년 후에 그는 카르투지오회의 재정담당이 되었고, 1175년에는 잉글랜드(England)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의 성덕과 학덕에 대한 명성은 전 영국에 퍼졌고, 그의 영향력 또한 점점 커졌다. 이 때문에 그는 거의 18년 동안이나 공석 중이던 영국 잉글랜드 중동부 링컨 교구를 맡아 교구의 신앙을 일신하였는데, 이때 보여 준 그의 지혜와 정의는 너무나도 유명하였다. 그는 잉글랜드에 사는 유대인 박해정책을 반대하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1200년 11월 17일 런던(London)에서 사망하였고, 1220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힐다(Hilda)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614-680년

지역 : 휘트비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국왕 성 에드윈(Edwin, 10월 12일)의 조카딸인 성녀 힐다는 627년 요크(York)에서 성 바울리누스(Paulinus, 10월 10일)로부터 성 에드윈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33세까지 귀족생활을 하다가 동생인 성녀 헤레스위타(Hereswitha)가 있는 프랑스의 셸르(Chelles) 수녀원으로 갔다. 그러나 성 아이다누스(Aidanus, 8월 31일)의 요청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웨어(Wear) 강변의 한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녀는 하틀풀(Hartlepool)에 수녀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특히 지혜의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휘트비 시노드에서 켈트(Celtic) 전례를 주창하였으나, 국왕 오스위(Oswy)의 명에 따라 로마 전례를 받아들일 만큼 순종할 줄 알았다고 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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