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1월 7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1. 7.
728x90
반응형

니칸데르(Nicander)

헤시키오(Hesychius)

히에론(Hieron)

신분 : 순교자

연대 : 300년

지역 : 아르메니아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히에론(Hieron)과 니칸데르 그리고 헤시키우스(Hesychi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밀틸레네(Mitilene)에서 33명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순교할 때 함께 순교하였다.

 

루포(Rufus)

신분 : 주교

연대 : 400년

지역 : 메스

 

   프랑스 메스의 초기 주교인 성 루푸스(또는 루포)는 거의 29년 이상 자신의 교구를 돌보았다. 그는 아마도 386년 프리실리아누스파(Priscillians)와의 논쟁과 연관되어 언급된 메스의 루푸스와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멜라시포(Melasippus)

안토니오(Antony)

카리나(Carina)

신분 : 순교자

연대 : 360년

 

   성 멜라시푸스(또는 멜라시포)와 성녀 카리나(Carina)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성 안토니우스(Antonius)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에서 순교하였다. 이들 부부는 고문 끝에 순교하였고, 성 안토니우스는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빌리브로르도(Willibrord)

 

 

신분 : 선교사, 주교

연대 : 658-739년

지역 : 에히티나흐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 출신인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또는 빌리보로르도)는 일곱 살 때에 리펀(Ripon)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성 발프리두스(Walfridus)의 지도를 받았고, 12세 때에는 성 에그베르투스(Egbertus)와 성 비그베르투스(Wigbertus)와 더불어 공부하였다. 그는 30세 때에 사제가 되었고, 11명의 잉글랜드(England) 사제들과 함께 네덜란드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교황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로부터 프리슬란트의 설교권을 얻었으며, 피핀 대왕으로부터 큰 격려와 지원을 받았다. 695년 그는 프리슬란트 사람들의 주교로 축성되어 그의 주교좌를 위트레흐트(Utrecht)에 세웠다. 또한 그는 룩셈부르크에 에히티나흐 수도원을 세움으로써 이 수도원 운동이 덴마크까지 파급되게 하였다. 또 그는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아들 피핀을 개종시킴으로써, 그의 선교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그는 ‘프리슬란트 사람들의 사도’로 공경을 받는다.

 

아마란토(Amaranthus)

신분 : 순교자

연대 : 3세기

지역 : 알비

 

   투르(Tours)의 주교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는 프랑스 남부의 알비에서 공경을 받고 있는 성 아마란투스(또는 아마란토)의 순교에 대해 증언하였다. 그 외에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아욱토(Auctus)

타우리온(Taurion)

테살로니카(Thessalonica)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아욱투스(또는 아욱토)와 성 타우리온(Taurion) 그리고 성녀 테살로니카(Thessalonica)는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암피폴리스(Amphipolis)에서 순교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아킬라(Achillas)

신분 : 주교

연대 : 313년

지역 : 알렉산드리아

 

  성 아킬라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성 베드로(Petrus, 11월 26일) 주교를 계승하여 그 도시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또한 후일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단을 창시한 아리우스(Arius)에게 사제품을 준 주교였다.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는 또 다른 이단인 멜레티우스(Meletius)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성 아킬라 주교가 비방과 공격을 받을 때 그의 교리에 대한 정통성을 지지하고 칭송하였다.

 

 

안토니오 발디누치(Anthony Baldinucci) (복자)

신분 : 선교사

연대 : 1665-1717년

 

   안토니우스 발디누치(Antonius Baldinucci, 또는 안토니오)의 부친은 필립보 발디누치(Filippo Baldinucci)로 이탈리아의 저명한 화가이자 전문적인 미술사가였다. 필립보가 중병을 앓아누웠을 때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우스에게 기도하여 회복하였기 때문에 이번에 태어날 아기는 꼭 성인으로 만들겠다고 서원하였다. 그런데 성 안토니우스 발디누치가 성 안토니우스 8일 축일 내에 태어났으므로 안토니우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집은 한때 알로이시우스 곤자가(Aloysius Gonzaga) 성인이 살았던 집이었다.

   16세 때 그는 자발적으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인도 선교사를 희망하였으나 테르니(Terni)와 로마(Rome) 등지에서 젊은이의 교육에 헌신하다가 30세에 이르러서야 사제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인도 선교사에게 필요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테르보(Viterbo)와 프라스카티(Frascati) 지방에 선교하라는 명이 떨어져서 크게 실망하였으나, 그 즉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주민들을 교육하였으며, 직접 무거운 십자가를 끌거나 쇠사슬을 매고서 설교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때문에 그의 청중들은 대개 거대한 무리를 이루었다.

   또 그는 몇 권의 설교집과 교육 자료집 및 회보 등을 발행하였다. 밤에는 세 시간 정도밖에 잠자지 않았고 매주 3일간 단식하였다. 그는 20년 동안 13개 교구에 448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였다. 1708년 코시모 3세 공작의 명에 따라 레그른에서 설교했는데, 이때 그는 맨발로 그 도시에 도착하여 놀라운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카르피네토 선교 여행 중에 선종하였다. 그는 1893년 4월 23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엔젤베르토(Engelbert)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1187-1225년

 

 

  베르그의 백작 아들로 태어난 성 엔겔베르투스(Engelbertus, 또는 엔젤베르토)는 독일 쾰른(Koln)의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창시절에 이미 가족들의 영향으로 수많은 교회의 은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오토 4세 황제에 대항하는 군대를 일으켜 단죄되었으나, 알비파(Albigenses)를 무찌르는 십자군에 가담한 후에는 단죄가 해제되고 쾰른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이때가 만 30세 되던 해였다.

   그는 자기 교구를 슬기롭게 운영하였고, 성직자들의 규율을 재정비하였으며,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를 교구로 영입하는 등 교구 발전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시노드(Synod)를 소집케 하고, 수도생활을 권장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이 돌보기로 유명하였다.

   또한 그는 정치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데,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적극 지원하였고 로마(Rome)의 왕 하인리히를 대관하였다. 그러나 1225년에 그의 사촌 프리드리히 백작과의 불화에 말려들게 되어 마침내 살해되고 말았다. 비록 그가 공식적으로는 시성된 기록은 없으나 로마 순교록에는 성 엔젤베르투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쾰른에서는 큰 축일로 지냈다.

 

프로스도치모(Prosdocimus)

신분 : 베드로의 제자, 주교

연대 : 100년

지역 : 파도바

 

  그리스 태생의 성 프로스도키무스(또는 프로스도치모)는 파도바의 초대주교로서 그 지역 전역에 신앙의 전파한 이유로 해서 이탈리아 북부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봉헌된 호화로운 경당을 지닌 성 유스티나(Justina) 성당이 파도바 성벽 밖 그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그 성당에는 또한 성 프로스도키무스의 부제인 성 다니엘(Daniel, 1월 3일)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1064년에 그들의 유해가 다시 발견되어 파도바의 성 소피아(Sophia) 주교좌 성당으로 옮겨 모셔졌다. 성 프로스도키무스는 전통적으로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파견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이를 부정하고 있다.

 

플로렌시오(Florentius)

신분 : 주교

연대 : 693년

지역 : 스트라스부르

 

   성 플로렌티우스(또는 플로렌시오)는 아일랜드 사람이지만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사도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일찍이 린겔베르크(Ringelberg) 계곡으로 들어와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그 때부터 인근 부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농아였던 성 다고베르트 2세(Dagobert II) 왕의 딸을 기적적으로 치유함으로써 그의 선교 활동은 크게 성공하였다. 국왕은 알자스의 하셀락(Haselac) 교외에 수도원을 지어 주었다. 그는 678년경에 스트라스부르의 주교로 승품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에 그는 매우 효과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다.

 

헤르쿨라노(Herculanus)

 

신분 : 주교

연대 : 547년

지역 : 페루자

 

   고트족(Goths)들이 이탈리아 페루자를 7년 동안 점령하고 있을 때, 그들은 그곳의 주교인 성 헤르쿨라누스(또는 헤르쿨라노)를 가장 야만적인 방법, 즉 살가죽을 벗기고 참수하는 형벌로 무참하게 죽였다. 신자들은 재빨리 그의 머리만을 수습하여 장사 지낸 뒤 40여 일 후에 성 베드로(Petrus) 성당으로 이장하여 순교자로 공경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