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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2일 성인

by 세포네 2006.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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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파르 델 부팔로(1.2)

신분 : 신부, 설립자

연대 : 1786-1837년

 

   이탈리아 로마(Rome) 태생인 성 가스파르는 요리사의 아들이었으나, 콜레지오 로마노에서 교육받고 1808년에 서품되었다. 그는 교황 비오 8세(Pius VIII)의 추방 이후 나폴레옹 보나팔트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기 때문에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5년 동안 코르시카(Corsica)로 유배당하였다.

   그가 귀향할 때에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었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회를 설립하여 1815년에 교황 비오 7세로부터 보혈선교회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 성 가스파르는 스폴레토(Spoleto) 부근 지아노(Giano)와 알바노(Albano)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나폴레옹의 통치 기간이었기에 이런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의 선교회는 날로 발전하였다. 그는 또 자선사업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임하였으며, 세상의 복음화가 자기 선교사들의 목표임을 늘 주지시켰다. 그는 알바노에서 콜레라에 희생되어 운명하였다. 그는 1904년 복자품에 올랐고, 1954년에 교황 비오 1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나르치소(1.2)

마르첼리노(1.2) (소년)

아르제오(1.2)

신분 : 순교자

연대 : 320년

 

   성 나르키수스(또는 나르치소)와 성 아르게우스(Argeus)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군인으로 형제간이다. 그들은 흑해 연안 폰투스(Pontus)의 토미(Tomi)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는 군복무 이행을 거부한 소년으로서, 잔인하게 매를 맞고 오랫동안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마르티니아노(1.2)

신분 : 주교

연대 : 435

지역 : 밀라노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423년부터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로서, 에페소 공의회에 참여하여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저술하였다.

 

마카리오(1.2)

신분 : 신부, 수도원장

연대 : 394년

지역 :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의 시민인 성 마카리우스(또는 마카리오)는 과자장수를 하다가 하느님께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세상을 멀리하고, 6년 동안 사막에서 고행과 관상으로 지냈다. 그의 첫 은수처는 테베(Thebes, 오늘날의 룩소르 Luxor 근방)이다. 그리고 373년에는 이집트 남부로 가서 스케테(Scete)와 니트리아(Nitria) 사막에 움막을 지었다. 그 당시의 은수자들은 각각 자기 움막에서 독수생활을 하였다.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극도로 엄격한 규율을 지켰으며 기적도 수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 그는 성 마카리우스(1월 15일)와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아리우스파(Arianism) 총대주교인 루키우스에 의하여 나일 강의 한 섬으로 추방된 적도 있으나 결국은 귀향이 허가되어 돌아왔다. 그는 니트리아에 있는 수도원을 위하여 회헌을 집필하였는데, 이 중의 여러 규칙이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인용하고 자신의 회칙에 삽입하여 그 맥이 지금도 이어온다.

 

문킨(1.2)

신분 : 수도원장, 주교

연대 : 7세기

지역 :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리머릭(Limerick)의 수호성인인 성 문킨은 ‘현인’으로도 불린다. 그는 카운티 클레르에서 리머릭으로 왔으며 그곳의 주교였다. 그 외의 자세한 내력은 알려진 것이 없다.

 

벤티보글리오(1.2)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232년

지역 : 보니스

 

   이탈리아 마르카의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태생인 벤티보글리오는 설립자가 활동하던 당시에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의 생애를 알려주는 자료는 희박하지만, 그의 표양에 감탄한 온 가족과 친척들이 그를 훌륭한 수도자로 인정하였다고 한다. 그는 초기 작은 형제회 회원들 중에서도 청빈과 단순의 덕에서 뛰어난 인물이다. 그 당시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본당신부도 숲 속에서 기도하는 벤티보글리오가 탈혼에 빠졌다가 오랜 시간동안 공중에 떠있음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이외에도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에는 그에 대한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고향 마을에서 성탄절을 기하여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52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빈첸시아노(1.2)

신분 : 은수자

연대 : 672년?

 

   성 빈첸시아누스(또는 빈첸시아노)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서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Cahors)의 주교인 성 데시데리우스(Desiderius, 11월 15일)의 요청을 받아들인 아키텐(Aquitaine)의 공작 베락드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러나 베락드 공작은 곧 선종했고, 그의 아들은 그를 쫒아내 버렸다. 그 후 그는 자기 옷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버렸으며, 약혼자도 포기함으로써 심한 고통을 당했다. 이윽고 그는 은수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오베르뉴(Auvergne) 교구의 어느 숲 속으로 들어가 숨었는데 그의 성덕은 더욱 높아만 갔다.

 

스테파나 드 퀸차니(1.2) (복녀)

 

신분 : 3회원

연대 : 1457-1530년

 

   이탈리아의 브레시아(Brescia) 교외에서 출생한 스테파나 드 퀸차니는 15세 때에 손치노(Soncino)에 있던 도미니코회 3회에 입회한 후부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 후 그녀는 손치노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녀는 자주 탈혼하였는데, 특히 예수 수난의 각 단계에 직접 참여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치유의 은사로 자신의 신심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스테파니 드 퀸차니(Stephanie de Quinzani)로도 불리며, 1740년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그녀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시리디온(1.2)

신분 : 주교

연대 : 연대미상

 

  연대미상의 성 시리디온은 아마도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가 언급한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나 성 이시리디온(Isiridion)의 필기 오류로 여겨진다.

 

아달하르도(1.2)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753-827년

지역 : 코르비

 

   성 아달하르두스(Adalhardus, 또는 아달하르도)는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손자이자 피핀 왕의 동생인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아들로 아델라드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알퀴누스(Alcuinus)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773년에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y)의 코르비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비록 그가 수도원 생활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그의 사촌인 샤를대제(Charlemagne)에 의하여 자주 궁중으로 불려갔으며, 끝내는 왕의 고문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샤를대제의 큰 아들 피핀의 전속사제였고, 피핀이 810년에 사망하자 다시 피핀의 아들 베르나르두스의 개인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루이 황제에 대한 반역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아키텐(Aquitaine) 연안의 한 섬으로 유배당하여 그곳에서 5년을 살았으나, 루이 황제는 그의 무죄를 믿었으며 821년에 궁중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다시 추방되었는데, 이번에는 성덕과 엄격함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 대한 관심이 나쁜 평판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는 코르비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독일과 프랑스 언어뿐만 아니라 라틴어까지 가르치는 배움의 전당이 되었다. 그는 코르비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사망하였다.

 

아벨(1.2)

신분 : 구약인불

연대 : 연대미상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창세 4,2)로 밭을 가는 농부인 형 카인(Cain)과는 달리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아담의 가족은 하느님께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이때 우발적인 사건으로 아벨은 형 카인에게 죽임을 당하여 인류 최초로 살해당한 인물이 되었다. 기르던 양떼 가운데에서 맏배를 잡아 기름기를 봉헌한 아벨의 예물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졌으나 카인이 드린 곡식 예물은 반기시지 않자, 시기심에 사로잡힌 카인이 동생 아벨을 들로 나가자고 꼬여 죽였던 것이다(창세 4,3-8).

   창세기에서는 아벨에 대하여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지만, 복음서에서는 아벨은 무죄하다고 평가되었다(마태 23,35; 루가 11,51). 복음서는 아벨의 죽음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원인이 되어 빚어진 예언자 내지 순교자의 죽음과 유사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산 첫 번째 인물로 ‘아벨’을 꼽았다(히브 11,4). 아벨의 예물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은 믿음으로 형 카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풀이함으로써 아벨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살해된 인물로 평가하였다.

 

아이랄도(1.2)

신분 : 주교

연대 : 1146년?

지역 : 모리엔느

 

   성 아이랄두스(또는 아이랄도)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백작 빌리암 2세(William II)의 아들인데, 그의 다른 세 형제 중의 하나는 칼리스투스 2세(Callistus II)로 교황좌에 올랐고, 다른 형은 카스티야(Castilla)의 왕인 라이문두스(Raymundus)이며, 세 번째는 포르투갈의 백작 헨리쿠스(Henricus)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랄두스는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었다. 모리엔느 대성당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 귀족 출신이며 포르테스의 수도자인 아이랄두스가 교회의 빛이며 성좌의 영광을 높이다가 누워있다. 그의 성덕은 빛나고 그의 기적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시도로(1.2)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4세기?

지역 : 안티오키아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아리우스파에 의해 안티오키아에서 순교한 동방교회의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 소개되어 있는 그에 대한 증언은 모호한 편이다.

 

이시도로(1.2)

신분 : 주교

연대 : 4세기경

지역 : 니트리아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의해 신앙심이 두텁고 존경할 만한 주교로서 언급되었다. 그는 또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이집트에 왔을 때 그를 환대해 주었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펠루시움(Pelusium)의 성 이시도루스(2월 4일)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제라르도 코뇰리(1.2)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345년

 

   게라르두스 코뇰리(Gerardus Cognoli, 또는 제라르도)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어느 귀족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10살 때에 부친을 여의였고 그 얼마 후에는 모친마저 잃었다. 친척들은 결혼하기를 강요하였으나 그는 모든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40세 때까지 순례와 은수자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황량한 시칠리아(Sicilia) 섬을 떠나지 않았다.

   이때 그는 프랑스 앙주(Anjou)의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8월 19일)의 성덕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평수사로서 놀라운 단순 덕과 겸손을 보였다. 가끔씩 부엌일을 하던 중에 기도에 몰두하여 물의를 일으킨 때도 있었다. 한 마디로 그의 성덕은 아주 높은 단계였다. 그의 식사는 빵과 물이 전부였고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잤다. 그는 너무나 자주 탈혼에 빠졌는데 그 때에는 그의 주변에 광채가 빛났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8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승인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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