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감상실]/클래식 교향곡

말러 / 교향곡 3번

by 세포네 2014. 11. 8.
728x90



                  Mahler, Symphony No.3 in D minor
                            말러 / 교향곡 3번
                            Gustav Mahler 1860-1911




말러의 교향곡은 길기로 유명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교향곡 3번은 가장 길다. 전곡 연주시간이 무려 100분이나 되는 교향곡 3번은 다른 교향곡들보다 악장 수가 더 많아서 모두 6악장으로 이루어졌다. 말러는 왜 이렇게 긴 교향곡을 작곡했을까? 말러가 이 교향곡에서 다룬 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런 의문은 금방 풀리게 된다. 말러는 교향곡 3번에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의 혼란스러운 세계로부터 영원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이 교향곡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방대하다. 그러니 100분이라는 시간도 그렇게 긴 것만은 아닌 듯하다.
말러가 교향곡 3번의 주제에 대해 설명한 프로그램 노트를 살펴보면, 1악장은 ‘목신 판이 깨어나고, 여름이 행진해 오는 것’이며, 2악장은 ‘초원의 꽃들이 내게 말하는 것’, 3악장은 ‘숲속의 짐승들이 내게 말하는 것’, 4악장은 ‘인간이 내게 말하는 것’, 5악장은 ‘천사들이 내게 말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6악장은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1악장에서 목신 판이 깨어나면서 여름이 도래하고 이 세계가 생기로 가득 차게 되면, 2악장부터 6악장까지 천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씩 하나씩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게 된다.

우주의 모든 만물, 광대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말러는 교향곡 2번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향곡 3번에도 사람의 목소리를 편성했다. 그는 4악장에선 알토 독창을, 5악장에선 알토 독창에 어린이 합창, 여성 합창을 더하여 인간과 천사들이 말하는 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다. 성악이 나온다는 점에서 교향곡 3번은 교향곡 2번과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말러가 교향곡 2번 ‘부활’에서 죽음의 의미에 천착했다면 교향곡 3번에선 우리 앞에 펼쳐진 광대한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만물들이 생명으로 약동하는 여름, 들에 핀 꽃과 숲속의 짐승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교향곡 3번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교향곡의 첫 부분은 호른의 힘찬 연주로 시작된다. 마치 아직 신비스러운 혼돈에 휩싸여 있는 이 세상을 일깨우는 듯한 소리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은 춥고 어두운 겨울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무시무시한 장송 행진곡과 트롬본의 레치타티보가 들려온다. 그때 현악기가 부스럭거리는 트릴을 연주하고 오보에가 노래를 시작하면, 커다란 귀에 작은 뿔, 그리고 염소 다리를 한 목신 판(Pan)이 나타난다. 달콤한 잠에 빠져 있던 그는 여름의 전령이 왔음을 알리는 클라리넷의 팡파르에 잠이 깬다. 판과 함께 시작된 여름의 행렬이 점차 가까워지면 모든 생명체들이 다 함께 일어나 소란스러운 행진을 시작한다.
판이 몰고 온 여름은 ‘패닉’(panic, 돌연한 공포)하다. 판은 꽤 익살스럽고 플루트도 제법 잘 불지만 이유 없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판과 함께 시작된 떠들썩한 여름의 행진곡은, 판이 지르는 괴성과 뒤섞여 그로테스크하게 전개된다. 여름과 더불어 깨어난 모든 생물들은 이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기 시작한다. 2악장에서 우리는 초원에 핀 꽃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아한 미뉴에트의 리듬을 타고 흐르는 꽃노래는 이 교향곡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음악이다. 2악장에 대해 말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내가 작곡한 음악 중에서 가장 편안한 음악이다. 마치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꽃과 같이. 꽃이 바람에 흔들리듯 음악도 그렇게 흔들린다. 베이스는 가벼운 피치카토를 연주하고 강하 악센트를 쓰지 않는다. 낮은 소리를 내는 무거운 타악기도 사용되지 않는다. (...) 하지만 꽃의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갑자기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강한 폭풍이 초원을 휩쓸고 지나가 꽃과 풀들을 흔들어 놓자 그들은 신음하고 흐느낀다. 마치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
초원의 꽃들이 갈망했던 한 단계 더 높은 차원, 그것은 바로 3악장에 나타난 세계다. 그곳은 바로 숲속의 짐승들이 사는 곳,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울창한 처녀림이다. 거기서 한 슬픈 사건이 일어났다. 여름 내내 즐겁게 지저귀던 뻐꾸기가 푸른 수양버들에서 떨어져 죽어버린 것이다. 여기저기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구슬픈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뻐꾸기의 죽음은 곧 여름의 끝이다. 하지만 곧 그의 뒤를 이어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이팅게일이 올 것이다. 바이올린이 16분음표로 된 밝은 선율을 연주하며 사랑스러운 나이팅게일을 기다린다. 숲속의 짐승들은 여름이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즐겁게 뛰놀지만, 저 멀리서는 떠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포스트 호른의 노래가 쓸쓸하게 울려 퍼진다.
이제 여름이 가고 깊은 밤이 찾아왔다. 4악장은 깊고 고요한 밤의 정적으로 시작된다. 밤의 적막을 상징하는 심각하고 진지한 음악이 흐르면 알토 독창자가 이렇게 노래한다. “오, 인간이여! 조심하라! 깊은 밤은 무엇을 말하는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비로운 현악기의 하모닉스를 배경으로 트롬본의 높은 음과 피콜로의 낮은 음이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깊은 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쾌락은 영원을 갈망한다! 깊고 깊은 영원을.”

고요한 밤을 지나 천국의 기쁨을 향해

밤의 마지막 떨림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천사들의 즐거운 노래가 밤의 적막을 깨며 복된 천상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5악장 도입부에서 천국의 종소리가 발랄한 어린이 합창으로 표현되면 여성 합창이 천사들의 달콤한 노래를 시작하고, 목관과 호른, 하프와 글로켄슈필의 밝은 음색이 천사들의 순수한 음성과 어우러져 천국의 기쁨을 나타낸다. 신의 축복으로 가득한 천상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모든 죄가 용서된다. 베드로가 죄를 지어 슬피 울지만, 그는 예수를 통해 죄를 용서 받고 복된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천상의 세계는 영원한 사랑과 더불어 완성된다. 영원한 사랑, 그것은 바로 불멸의 신 그 자체다. 말러는 6악장에서 바로 이 무한한 신의 사랑을 음악으로 말하고자 한다. 말러는 교향곡의 피날레로는 드물게 마지막 6악장의 템포를 느린 아다지오로 설정한다. 여기서 전 우주는 신의 사랑 안에 비로소 진정한 안식을 찾는다.
728x90
반응형

'[음악감상실] > 클래식 교향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Bruckner / Symphony No 7  (0) 2014.11.19
말러 / 교향곡 제9번  (0) 2014.11.16
말러 / 교향곡 5번  (0) 2014.10.24
베토벤 / 교항굑 제3번 "Eroica"  (0) 2014.10.23
스메타나 / 나의 조국  (0) 2014.09.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