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한국순교자

<22> 전주교구 고창, 김제 순교지 |

by 세포네 2014. 12. 14.
728x90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는 동정부부 순교자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를 ‘한국 순교자들의 보석’이라고 칭했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장남과 며느리이기도 했던 이 부부는 전주옥과 숲정이에서 각각 순교했다.

 

 

두 곳은 전주교구 복자 24위 중 18위가 순교한 곳이다. 이 순교터들은 순교자들의 피가 마르지 않은 곳이자, 천주를 향한 기도가 끊이지 않던 자리다. 이러한 주님 용사들의 숨결을 느끼고자 전주옥 터와 숲정이 성지 그리고 그들이 묻힌 치명자산을 찾았다.

 

 

의연히 칼을 받다

전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주천 동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4km 떨어진 곳에 숲정이 성지가 있다. 나무가 많아 ‘숲머리’라고도 불렸던 이곳은 조선 시대 군사 훈련장인 장대가 있던 곳이자 중죄인들을 벌하던 처형장이었다.

복자 중 이순이를 비롯해 김천애(안드레아)ㆍ유중성(마태오)ㆍ이일언(욥)ㆍ신태보(베드로)ㆍ이태권(베드로)ㆍ정태봉(바오로)ㆍ김대권(베드로)ㆍ홍재영(프로타시오)ㆍ최조이(바르바라)ㆍ이조이(막달레나)ㆍ오종례(야고보) 등 12위가 이곳에서 칼을 받고 순교했다.

숲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치명터에는 우거진 나무 대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그 사이 진북초등학교 맞은편, 성지 건물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많은 순례객 이름으로 가득 찬 방명록에 이름 세 글자를 적었다.

잔디와 꽃으로 잘 꾸며진 마당으로 가자 성모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마치 순교 복자들을 끌어안고 있는 듯했다.

 

 

 

칼탑은 아파트 사이에 있지만 그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위용 있게 서 있었다. 탑 맨 위에 달린 참수 칼과 승리의 상징인 빨마가지가 더욱 푸르게 보였다.

사실 정확한 숲정이 순교터는 성지에서 약 300m 떨어진 진북파출소 맞은편 자리다. 신자들은 본래 자리에 성지를 조성하려 했으나 여러 사정상 그러지 못했다. 1994년 순교터가 제자리를 잃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성직자와 신자들이 이곳을 매입했다. 그리고 1998년 순교자 대축일, 현재 자리에 칼탑이 세워졌다.

 

 

기도로 이겨낸 고통

전주시청에서 현무2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니 한국전통문화전당에 도착했다. 순교지와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이곳은 유중철과 유문석(요한)ㆍ이경언(바오로)ㆍ김조이(아나스타시아)ㆍ심조이(바르바라)ㆍ이봉금(아나스타시아) 등 6위가 순교한 전주옥이 있던 자리다.

최근 전주교구는 전당 입구에 옥터와 복자들에 대한 설명을 담은 표지를 세웠다. 이곳이 신앙 선조들을 잡아 가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시였다.

옥에서 순교한 복자 중에는 12살도 안 된 나이에 치명한 이봉금도 있다. 그는 가장 어렸지만 신앙심은 누구보다 깊고 순결했다. 회유하는 관장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오늘 천주님을 배반하고 욕을 하라고 하시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천 번 죽어도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또 옥에서 순교한 이경언은 이순이의 동생이었다. 평소 몸이 약했던 그는 혹독한 형벌을 받으면서 여러 차례 유혹을 겪었다. 하지만 기도의 힘으로 신앙을 지키며 절대 배교하지 않았다.

“상처의 괴로움으로 말하자면, 나의 너무나 연약한 육체만으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천주의 은총과 성모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어찌 한시인들 이를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고 35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주님께 영혼을 바쳤다.

 

순교지 바라보며

혼인 후 4년 동안 오누이처럼 지냈던 유중철과 이순이는 죽어서도 한 곳에 묻혔다. 전동성당 주임 보두네 신부는 1914년 초남이 근처에 임시 매장돼 있던 동정 부부와 그 가족의 유해를 중바위산 높은 곳에 모셨다. 그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 산을 치명자가 묻힌 산, ‘치명자산’이라 부르게 됐다.

묘에 함께 묻힌 이들은 동정 부부를 비롯해 아버지 유항검(아우구스티노)ㆍ어머니 신희ㆍ동생 유문철(요한)ㆍ숙모 이육희ㆍ사촌동생 유중성(마태오) 등 일가 7명. 묘지에서 아래를 내다보자 전주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땅에 묻혀서도 박해받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교자 무덤 앞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밟고 섰다. 고개를 들어 십자가 오른쪽 바위를 바라보자 손 모아 기도하는 천사의 모습이 보였다. 반대편에서 이 바위를 바라보면 마치 앉아계신 성모님처럼 보인다. 천사와 성모님 얘기는 순교자 신심에 감동한 사람들이 전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순교자들은 이미 하느님 나라에서 천사와 함께 지내고 있지 않을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