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영성]/차윤석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16. 독일 파사우 마리아 힐프 수도원 순례 성당

세포네 2025. 2. 23. 17:12

신성 로마 제국 ‘도움의 성모’ 기원 파사우 마리아 힐프 성당

오버하우스 요새에서 바라본 파사우 구도심과 마리아 힐프 수도원. 니더른부르크 수도원(가운데)·성 미카엘 성당(우측)도 보인다. 대성당은 사진 밖 우측에 있다

세 강이 합류하는 ‘물의 도시’ 파사우

도나우·인·일츠. 세 강이 합류하는 독일 파사우는 ‘물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타키투스의 「동시대사」를 보면 로마군은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를 가로지르는 인강 유역부터 점령해 나갑니다. 인강이 철의 산지 노리쿰을 관류하는 도나우강의 지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강이 도나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파사우는 로마군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 세워진 ‘바타비아’ 국경 요새가 오늘날 파사우의 시초지요.

‘오버하우스 요새’ 전망대에 오르면 도나우강과 인강 사이의 길고 좁다란 반도에 있는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양파 모양의 두 탑과 ‘보헤미아 두건’이라 불리는 거대한 돔을 지닌 성 스테파노 대성당·성 미카엘 성당·니더른부르크 수도원 성당까지, 무엇보다 서로 다른 색의 강이 합쳐지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독일 파사우 마리아 힐프 수도원 순례 성당. 1622년 루카스 크라나흐의 ‘도움의 성모’를 모시기 위해 지은 소성당에서 순례가 시작됐다.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이어 2002년부터 성바오로수도회에서 순례자를 보살피고 있다

1300년 역사의 성 스테파노 주교좌 성당

이미 450년 무렵에 이곳 주교의 성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로마군이 철수한 뒤로는 꽤 오랫동안 이교도의 땅이었을 겁니다. 720년경 옛 로마 시대의 성당 자리에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한 성당이 세워졌고, 739년 성 보니파시오에 의해 파사우 교구가 설정되면서 교회법상 정식 교구 주교좌 성당이 됩니다. 이 무렵 넓은 숲이 펼쳐진 도나우강 북쪽과 일츠강 유역의 영지를 소유하게 된 니더른부르크 수녀원도 설립됐습니다.

파사우는 도나우강 하류의 마우테른과 소금 교역과 해운으로 크게 번창합니다. 당시 파사우교구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 주교 관할권을 지녔습니다. 독일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지로서 신성 로마 제국에서 가장 큰 교구였고, 오늘날 오스트리아 수도 빈도 교구 산하에 있었습니다. 성 스테파노 대성당은 바로 이 역사적 유산입니다.

이 중심에는 파사우 교구장 필그림 주교(재위 971~991년)가 있었습니다. 필그림은 중세 독일 문학에서도 꼭 언급되는 주교입니다. 1200년 무렵 쓰인 영웅서사시 「니벨룽족의 노래」에서 크림힐트의 외삼촌으로 묘사되는데, 후속편 「니벨룽족의 비탄(悲嘆)」에서 그를 ‘니벨룽족이 겪은 비극을 보고 기록한 고귀한 이’라고 표현합니다.

역사상 필그림 주교는 오토 2세 황제에 대한 바이에른 공작의 반란으로 파괴된 파사우 재건을 맡습니다. 985년 8월 5일 로마네스크 양식의 삼랑 구조 본당과 가대석이 봉헌되는데, 사실상 오늘날 주교좌 성당의 시작입니다. 이후 성당 공사는 이를 기반으로 고딕·후기 고딕·바로크 양식으로 증축이나 보수했을 뿐입니다. 현재 102×37.5×69m의 크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은 1662년 화재 후 다시 지어진 것이지요. 성당 안은 치장 벽토와 프레스코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229개 레지스터와 1만 7974개 파이프를 갖춘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순례자를 맞이합니다.

파사우 성 스테파노 대성당. 1668~1693년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새 성당이다. 10세기 필그림 주교 치하, 12~13세기, 14세기 크게 증개축했으나 1662년 도시 화재로 그 흔적은 사라졌다. 대성당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총 5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5~10월까지 매월 한번 목요일 저녁 정기 콘서트, 여름 평일 정오에는 짧은 콘서트가 열린다
마리아 힐프 순례 성당 주제대. 루카스 크라나흐의 ‘도움의 성모’ 사본이 걸려 있다. 성당 천장의 황금 샹들리에는 레오폴트 1세가 1676년 파사우에서 결혼할 때 봉헌했다

30년 전쟁 중 치유와 도움의 성모 순례지

구도심 너머 언덕 위로 녹음이 짙은 숲 속에 붉은색 지붕과 흰 외벽의 교회 단지가 보입니다. 마치 섬에 놓인 다리처럼 기다란 통로가 아래 주택가까지 놓여 있는 독특한 모습인데요, 파사우 시민들의 성모 신심을 엿볼 수 있는 마리아 힐프 순례 성당입니다. 1622년 독일 르네상스 예술의 거장 루카스 크라나흐의 ‘도움의 성모’를 모신 소성당을 지으면서 순례가 시작됐습니다.

원래 이 성화는 1537년 무렵 작센 궁정을 위해 그린 그림으로 파사우의 주교이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레오폴트 5세가 드레스덴 왕궁에서 선물 받아 파사우로 가져왔습니다. 당시는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 중이었습니다. 제후주교령인 파사우는 초반부터 바이에른과 가톨릭 진영을 지원하며 전쟁에 뛰어들었고, 체코와 오스트리아에서 약탈과 전투를 피해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었죠. 불안이 불안을 낳던 시기에 은총의 장소가 탄생한 겁니다. 순례자들의 편리를 위해 1628년에는 언덕 경사로에 총 321개 계단으로 된 순례 통로까지 만들었는데, 지금도 계단을 오르면서 순례자의 수많은 봉헌판을 볼 수 있습니다. 1631년부터 카푸친 작은형제회가 자리해 순례 사목을 펼쳤습니다.

1683년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빈이 오스만 튀르크 군대에 포위됐을 때, 파사우로 피신한 레오폴트 1세 황제도 매일 이곳을 찾아 성모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가톨릭 연합군은 전장에서 “마리아여, 도와주소서 Maria Hilf!”라는 군호를 외치면서 싸웠고, 결국 전투에서 승리하며 빈을 지켜냅니다. 그 뒤로도 마리아 힐프 성당은 신성 로마 제국의 성모 신심 중심지가 됐지요.

마리아 힐프 수도원 순례 성당과 ‘거룩한 계단’. 321개 계단 위로 지붕을 씌웠고, 은총을 경험한 순례자들의 봉헌판이 걸려 있다

알프스 티롤 지역에 퍼진 ‘도움의 성모’ 신심

옛 순례자의 봉헌판들을 보며 거룩한 계단을 오르면 이내 수도원 수부에 다다릅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 주제대에 모셔진 도움의 성모를 바라봅니다. 엄마가 벌거벗은 아기를 안고 있고, 아기는 엄마 턱과 뺨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비잔틴 양식의 엘레우사 이콘 모습입니다.

지금 성당의 성화는 사본입니다. 원본은 30년 전쟁 후 전염병과 자연재해의 위협을 겪던 인스브루크 시민들을 위해 인스브루크 대성당으로 옮겼습니다. 이처럼 이곳을 시작으로 수많은 도움의 성모 사본이 알프스 티롤 지역에 퍼졌고, 신자들에게 치유와 보호의 대표 상징이 됩니다. 여느 독일 가정의 평범한 모자 모습처럼 부드럽고 따뜻함에 모든 이의 사랑과 공경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순례 팁>
※ 뮌헨 중앙역 → 파사우 중앙역(RE 2시간 15분), 레겐스부르크 중앙역 → 파사우 중앙역(ICE, 1시간), 린츠 중앙역 → 파사우 중앙역(ICE, 1시간 10분) 소요.
※ 오버하우스 요새에서 한눈에 바라보는 파사우! Mariahilfstrasse에서 마리아 힐프 순례 성당으로 올라가는 거룩한 계단(321계단)이 시작된다(대성당에서 25분 소요). 파사우 중앙역에서 시내버스(3번)를 타고 갈 수도 있다(Mariahilfplatz에서 하차).
※ 순례 성당 미사 : 주일과 대축일 10:00, 16:30(토), 19:00, 평일 : 09:00(월·화·목·금), 19:00(월·수·금). 관련 홈페이지 : http://www.mariahilf-passau.de